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에 대해 친구가 쓴 글 은
짤막하긴 해도 저 뛰어난 곡의 개성있는 단면을 잘 말해준다.
그 덕에 저 곡을 들을 때마다 머리 속에 강하게 떠오르곤 했던 한 생각을
이제서야 적어볼 기회를 갖게 됐다. (고마워 친구!)
내 감상은 이렇다.
라흐마니노프 3번을 들으면 비애와 절망에 빠진 한 개인의 내면이 보이고
그의 섬세하고 풍부한 감정이 주변의 모든 것을 "압도"하는데,
(Konstantin Somov 作 아래 초상화에서 상념에 빠진 듯
깊고 불투명하게 처리된 라흐마니노프의 시선도 이 내면성을 잘 보여준다)

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을 들으면
자기 속에도 진실로 비애와 고뇌를 갖고 있는 한 인간이
제 주변의 더 큰 비애와 절망을 보고 위로하며 어루만지고
때론 호통치기도 하고 때론 앞에서 노래부르며
손 내밀고 같이 가자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.
달리 말해보면, 라흐마니노프 3번에는
한 개인이 섬세하면서도 격정적인 감정을 동력으로
자기의 깊은 좌절을 스스로 극복하는 전율의 순간이 그려져 있는 반면,
베토벤 5번이 보여주는 것은
영웅적인 (그러나 또한 너무나 인간적인) 한 인간과 세계가
함께 비애와 절망을 치유해가는 지난한 과정이며,
그것이 동력으로 삼는 것은 비단 한 영웅적 개인의 의지와 통찰(vision)뿐만 아니라
그가 동시대인들과 맺는 관계와 형제애이기도 하다.

그런 의미에서 하나는 아름답게 승화된 "독백"의 한 정점 같고
다른 하나는 위대한 정신과 세계 사이의 웅대한 "대화"같다.
그래서 내게는 각기 낭만주의 피아니즘의 두 얼굴을 대표하는 뛰어난 곡으로 기억에 남는다.
(사족이지만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은 "황제"라는 표제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
그건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은 아니고—당대의 평론가였는지 아니면 출판업자였는지
지금 내 기억은 확실치 않지만—하여간 다른 사람이 붙여준 것이다.
그리고 원래 그 표제는 곡의 주제와 직접 관련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
모든 피아노 협주곡 중 "황제"라 칭할만큼 뛰어나다는 찬사의 표현이었다.)
짤막하긴 해도 저 뛰어난 곡의 개성있는 단면을 잘 말해준다.
그 덕에 저 곡을 들을 때마다 머리 속에 강하게 떠오르곤 했던 한 생각을
이제서야 적어볼 기회를 갖게 됐다. (고마워 친구!)
내 감상은 이렇다.
라흐마니노프 3번을 들으면 비애와 절망에 빠진 한 개인의 내면이 보이고
그의 섬세하고 풍부한 감정이 주변의 모든 것을 "압도"하는데,
(Konstantin Somov 作 아래 초상화에서 상념에 빠진 듯
깊고 불투명하게 처리된 라흐마니노프의 시선도 이 내면성을 잘 보여준다)

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을 들으면
자기 속에도 진실로 비애와 고뇌를 갖고 있는 한 인간이
제 주변의 더 큰 비애와 절망을 보고 위로하며 어루만지고
때론 호통치기도 하고 때론 앞에서 노래부르며
손 내밀고 같이 가자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.
달리 말해보면, 라흐마니노프 3번에는
한 개인이 섬세하면서도 격정적인 감정을 동력으로
자기의 깊은 좌절을 스스로 극복하는 전율의 순간이 그려져 있는 반면,
베토벤 5번이 보여주는 것은
영웅적인 (그러나 또한 너무나 인간적인) 한 인간과 세계가
함께 비애와 절망을 치유해가는 지난한 과정이며,
그것이 동력으로 삼는 것은 비단 한 영웅적 개인의 의지와 통찰(vision)뿐만 아니라
그가 동시대인들과 맺는 관계와 형제애이기도 하다.

그런 의미에서 하나는 아름답게 승화된 "독백"의 한 정점 같고
다른 하나는 위대한 정신과 세계 사이의 웅대한 "대화"같다.
그래서 내게는 각기 낭만주의 피아니즘의 두 얼굴을 대표하는 뛰어난 곡으로 기억에 남는다.
(사족이지만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은 "황제"라는 표제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
그건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은 아니고—당대의 평론가였는지 아니면 출판업자였는지
지금 내 기억은 확실치 않지만—하여간 다른 사람이 붙여준 것이다.
그리고 원래 그 표제는 곡의 주제와 직접 관련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
모든 피아노 협주곡 중 "황제"라 칭할만큼 뛰어나다는 찬사의 표현이었다.)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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